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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명숙 별세 프로필 나이 역사

대한민국의 길 문화를 새롭게 정의하고 고립되었던 제주의 자연을 전 세계인의 쉼터로 탈바꿈시킨 선구자, 서명숙 사단법인 제주올레 이사장이 2026년 4월 7일 향년 68세를 일기로 우리 곁을 떠났습니다. 평생을 펜과 발로 세상을 기록하고 치유했던 고인의 삶은 한국 현대사 속 여성 언론인의 상징이자, 자연과 인간의 공존을 실천한 환경 운동가의 표상으로 남게 되었습니다. 서명숙 이사장의 생애를 관통하는 핵심 키워드와 그녀가 남긴 위대한 유산에 대해 심도 있게 조명해 봅니다.



서귀포 소녀가 품었던 세상에 대한 호기심

1957년 서귀포에서 태어난 서명숙 이사장은 유년 시절부터 제주의 거친 바람과 따뜻한 햇살을 맞으며 성장했습니다. 척박한 환경 속에서도 굴하지 않는 제주 여성의 강인함과 섬 특유의 개방적인 정서는 훗날 그녀가 남성 중심의 언론계에서 독보적인 위치에 오르는 자양분이 되었습니다. 신성여고를 졸업하고 서울로 유학을 떠난 그녀는 고려대학교 교육학과에 진학하며 지적 탐구와 사회적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기 시작했습니다.
그녀의 청년기는 암울했던 시대 상황과 맞물려 있었습니다. 70년대와 80년대의 격동하는 한국 사회 속에서 그녀는 단순히 교단에 서는 교육자보다는 세상의 부조리를 알리는 기록자가 되기를 꿈꿨습니다. 대학 시절 만난 수많은 인연은 그녀의 가치관을 형성하는 데 큰 영향을 주었으며, 특히 훗날 베스트셀러가 된 '영초언니'의 주인공 천영초 선생과의 만남은 그녀의 인생에 있어 정의와 연대라는 가치를 깊게 각인시키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한국 여성 언론인의 역사를 새로 쓰다

1985년 '마당'이라는 월간지를 통해 기자 생활을 시작한 서명숙은 곧이어 '시사저널' 창간 멤버로 합류하며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정치부 기자로 이름을 날렸습니다. 당시 여성 기자가 정치 현장의 최전선에서 취재하는 것은 매우 이례적인 일이었으나, 그녀는 특유의 집요함과 날카로운 통찰력으로 권력의 핵심을 파고들었습니다.
그녀의 문장은 화려하기보다 정직했고, 비판은 날카롭되 따뜻한 시선을 잃지 않았습니다. 이러한 역량을 인정받아 주간지 역사상 최초의 여성 편집장이라는 금기시되었던 벽을 허물었고, 오마이뉴스 편집국장을 거치며 뉴미디어 시대의 편집 리더십을 발휘했습니다. 20여 년이 넘는 세월 동안 그녀는 권력에 아부하지 않는 언론인의 길을 걸으며, 후배 여성 기자들에게는 가야 할 길을 제시해 주는 이정표와 같은 존재가 되었습니다.



멈춤을 통한 재도약, 제주로의 회귀

성공의 정점에서 서명숙 이사장은 돌연 모든 것을 내려놓았습니다. 쉼 없이 달려온 23년의 언론인 생활은 명성만큼이나 큰 정신적 고갈을 가져왔기 때문입니다. 그녀는 스스로를 찾기 위해 스페인의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 순례길로 떠났습니다. 800km가 넘는 그 먼 길을 매일 걷고 또 걸으며 그녀는 비로소 '속도'가 아닌 '방향'의 중요성을 깨달았습니다.
스페인 길 위에서 만난 한 순례자가 "당신의 고향 제주에도 이렇게 아름다운 길이 있지 않느냐"고 던진 질문은 그녀의 인생 2막을 여는 신호탄이 되었습니다. 가장 가까이에 있었지만 미처 발견하지 못했던 고향의 가치를 깨달은 그녀는 귀국하자마자 고향 서귀포로 내려가 길을 찾기 시작했습니다. 이것은 단순히 관광지를 개발하는 사업이 아니라, 잊혔던 제주의 속살을 되살리고 인간의 영혼을 위로하는 문화적 혁명이었습니다.
 

제주올레, 마을과 사람을 잇는 평화의 선

2007년 가을, 그녀가 처음으로 세상에 내놓은 제주올레 1코스는 한국 관광의 패러다임을 완전히 바꾸어 놓았습니다. 이전까지의 여행이 차를 타고 유명 명소를 빠르게 도는 '점'의 여행이었다면, 올레는 두 발로 걸으며 제주의 돌담, 바람, 바다, 그리고 주민들의 삶을 온전히 느끼는 '선'의 여행이었습니다.
그녀는 길을 낼 때 중장비를 쓰지 않는 것을 원칙으로 삼았습니다. 덤불을 헤치고 가시덤불을 걷어내며 옛 사람들이 걸었던 사라진 길을 복원했습니다. 올레길이 지나는 마을 어르신들과 소통하며 길의 이름을 붙이고, 그들이 직접 운영하는 민박과 식당으로 여행객을 유도했습니다. 이는 '공정 여행'의 효시가 되었으며, 침체되었던 제주의 마을 경제에 활력을 불어넣었습니다. 26개의 코스, 총 437km에 이르는 대장정은 그렇게 그녀의 땀과 정성으로 완성되었습니다.
 

암을 극복한 불굴의 의지와 환경 철학

서명숙 이사장의 삶에 위기가 없었던 것은 아닙니다. 제주올레가 세계적인 명성을 얻어갈 무렵, 그녀에게 암이라는 불청객이 찾아왔습니다. 하지만 그녀는 절망하는 대신 다시 올레길 위에 섰습니다. 길을 걸으며 자연으로부터 얻는 치유의 힘을 몸소 증명해 보였습니다. 그녀는 "길은 나를 살린 최고의 의사이자 병원"이라고 말하며 병마와 싸우는 많은 이들에게 희망을 주었습니다.
그녀의 철학은 단순히 걷는 것에 머물지 않았습니다. 제주 자연을 훼손하는 무분별한 개발에 맞서 목소리를 높였고, 길 위의 쓰레기를 줍는 '클린올레' 캠페인을 통해 여행자가 자연의 손님이자 보호자가 되어야 함을 강조했습니다. 또한 일본, 몽골, 대만 등 전 세계에 올레의 철학을 전파하며 '월드 트레일' 네트워크의 핵심 인물로 활동했습니다.
 

서명숙이 남긴 우리들의 과제

서명숙 이사장이 우리 곁을 떠나며 남긴 유산은 명확합니다. 그것은 '자신을 돌볼 줄 아는 여유'와 '자연에 대한 경외심'입니다. 그녀가 일궈놓은 올레길은 이제 한국을 넘어 세계인이 사랑하는 명소가 되었으며, 그 길을 걷는 수많은 이들에게 위로를 건네고 있습니다.
고인은 늘 "제주올레는 내가 만든 것이 아니라 제주의 자연과 할망들이 물려준 길을 잠시 빌려 쓴 것뿐"이라고 겸손해했습니다. 이제 그녀는 자신이 그토록 사랑했던 서귀포의 흙길로 돌아갔지만, 그녀가 생전에 남긴 "놀멍 쉬멍(놀며 쉬며)"이라는 메시지는 속도에 매몰된 현대인들에게 영원한 화두로 남을 것입니다.
우리는 이제 그녀가 남긴 이 아름다운 길들을 어떻게 보존하고 가꿀 것인지 고민해야 합니다. 서명숙 이사장이 평생을 바쳐 지키고자 했던 제주의 원형과 그 안에서 피어나는 상생의 가치를 이어가는 것이야말로, 고인에 대한 진정한 예우이자 추모일 것입니다. 제주의 푸른 바다와 돌담 사이로 불어오는 바람 속에 그녀의 목소리가 들리는 듯합니다. "길은 끝나는 곳에서 다시 시작된다"는 그녀의 믿음처럼, 서명숙 이사장의 정신은 오늘도 올레길을 걷는 수만 명의 발걸음 속에서 새롭게 태동하고 있습니다.